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할힌골 전투 (문단 편집) == 매체에서 == [[파일:external/img.xooimage.com/combats-3654b75.jpg]] || [youtube(qV6Dj3cLQJ4)] || ||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qV6Dj3cLQJ4|영상 출처]] || * [[장동건]] 주연의 [[마이웨이]]의 초반은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, 전차에 대응하기 위해 [[반자이 어택]]과 [[대전차 총검술]]도 쓴다. 그런데 [[조선인]] 포로가 제23사단 소속으로서 소련군에게 잡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. 동향인들로 사단 병원을 충원하는 일본 육군 관례에 따라 제23사단은 [[시마네 현]] 출신들로 구성되었으며 따라서 조선인이 여기에 포함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. 물론 [[노르망디의 한국인|이 항목]]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할힌골에서도 조선인 출신 일본군 포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다른 소속이었다가 잡혔을 수도 있다. * [[마이웨이]]의 할힌골 전투 장면은, 망작으로 평가받는 이 영화 내에서 그나마 볼 만한 부분으로 평가받고 있지만, 전투 자체는 실제 역사적 고증에 충실했다기보다는 그냥 영화적 연출로 보는 게 좋다. 작중 일본군 보병들이 무지막지하게 터져나갔고 실제로는 교환비는 소련군이나 일본군이나 큰 차이가 없고 소련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봤으나 영화상으로 보면 교환비가 거의 1:3 수준이다.[* 엄폐물 하나 없는 평지, 그것도 적군이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대낮에 대전차용 무장이라곤 고작 [[수류탄]]과 [[화염병]]밖에 없는 보병대가 대규모의 기갑부대를 상대로 정면에서 전투를 벌여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화적 연출이다.] 광활한 평지인 만큼 야습을 해도 힘든 상황인데 오히려 일본군이 대놓고 밝은 아침에 평지를 건너 기습 공격을 하러 간다거나, 마찬가지로 소련군 전차가 밝은 아침에 대규모로 기동하는데 일본군은 그걸 전혀 모르는 등[* 심지어 소련군이 강을 건널 때 쓴 다리는 [[일본군]]이 [[소련군]]을 공격하러 가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. 매우 중요한 거점인데도 보초 하나 없었다.] 실제 역사의 그 막장 일본군과 비교해 봐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의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산재해있다. 그냥 [[태평양 전쟁]]에 걸쳐서 발생한 일본군의 그 막장 대전차 공격들을 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만 가치가 있다.[* 어쨌든 할힌골 전투가 비중있게 묘사된 영상매체는 해외를 포함해도 마이웨이 말고는 없기 때문에, 위 유튜브에서도 보이듯 마이웨이의 할힌골 전투장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은 편이다.] * 게다가 일본-소련은 전투 이후 [[1939년]] [[10월]] 포로를 교환했고, [[소련]]이 특별히 [[포로]]를 더 잡아둘 이유가 없었다. 소련이 [[2차 대전]] 후 [[독일]]과 [[일본]]의 포로를 억류한 것은 엄청난 인력 손실 때문에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며,[* 억류된 포로들은 10년 동안 강제 노역에 종사했으나, 임금 등의 대우는 비슷한 일을 하는 소련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받았다. 징병되어 일본 관동군에 있다가 소련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중 [[북한]]으로 넘겨져 [[조선인민군]] 병사 노릇을 하다 포로가 된 후 한국을 택한 한 분은 "노역 때문에 힘들기는 했어도 [[관동군]] 소련 포로 시절이 훨씬 대우가 나았다."고 증언했다. 소련이 포로 대우에 그다지 신경을 써주지 않는 나라였는데도 저런 말이 나온 것이다. 포로보다도 못한 생활을 했던 [[일본군]]이지만 개인의 의견으로 전체를 볼 수는 없는법이다.] [[대숙청]] 직후의 [[1939년]]처럼 [[굴라그]]에도 자국 노동력이 넘쳐나던 때는 굳이 포로를 송환하지 않으면서까지 자국에 억류할 필요가 없었다. 게다가 이런 포로 출신들을 자국병으로 징집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. 소련군은 패망 직전에도 불온한 민족([[체첸]]이나 소련 내 독일인 자치주 등)들을 반란을 일으킬까 봐 후방으로 강제 송환하고, 강제 이주된 [[고려인]]들이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해도 거부했는데, 성향이 의심스러운 일본군 포로 출신들을 자국군에 징집해서 전선에 투입하는 것은 더욱 생각하기 어렵다. 다만 확률이 0은 아니라고 추정할 수 있으며 대전차 자폭 트럭 등 영화적 상상력이 아주 많이 들어간 점은 고려해야 한다. *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잘못 한 가지를 저질렀는데, 군에 인연이 있는 지인이 이 사건을 눈감아 줄 테니 대신 입대하라고 해서 자원 입대한 것으로 나온다. 다만 당시에도 사상범, 불온-불순 분자, 범죄자 및 전과자 등은 황군의 자격이 없다고 하여 입대 대상에서 제외됐다. *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lSiRmPlFnmw|유튜버 Radio Tapok]]이 [[쓰시마 해전|쓰시마]]와 [[러시아 헌정위기|Чёрный октябрь(검은 10월)]]에 이어 자작곡을 만들어 업로드했다. 위에 언급된 영화 마이웨이의 장면들을 가져다 썼고, 가사 내용 역시 "붉은 군대가 일본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네" 같은 가사가 들어갔다. * [[야스히코 요시카즈]]의 [[만화]] [[무지갯빛 트로츠키]]에서 할힌골 전투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. 좀 과장을 섞자면 앞 분량 3/4는 할힌골 전투 이전의 일본군(특히 [[관동군]], 그 중에서도 [[이시와라 간지]]와 [[츠지 마사노부]])의 [[음모]]에 대해, 그리고 결말까지 1/4은 할힌골 전투를 그리고 있다. 주인공은 일개 흥안군 [[소위]]이기는 하지만 전장 상황에 대해서도 적절히 설명해 주고,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. 다만 같은 이유로 소련 쪽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이 한계였다. 그래도 당시 일본군의 열악한 상황이나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. * 동시대를 다룬 개념 시대극에서는 반드시 언급되는 사건, [[인간의 조건]]의 작가의 전쟁과 인간에서는 상당히 비중 있게 사건이 묘사된다. * 2차 대전 [[미니어쳐 게임]] [[Flames of War]]에서 추가된 일본군 시나리오가 이 전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. * [[대체역사물|대체역사 소설]] [[비명을 찾아서]]에서는 일본 항공대가 러시아 공군을 격파해 승리한다. 그리고 훗날 공군 기념일로 선포된다. 그런데 이 세계관에서 공군성은 해군성의 함재기 중심으로 성립되었다고 나온다.[* 총체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게, 육군 항공대는 작전 범위가 육상이고 또한 자기들 육상기지를 자체적으로 관리하니 독립 공군이 될 수 있지만, 해군 항공대는 작전 범위가 바다이고 바다에서의 원활한 작전을 위해서는 결국 항공모함을 타야 하므로 해군에서 독립이 불가능하다. 해군 항공대가 육상기지에서 대규모로 운용되는 경우는 [[G4M|항모에서 운용할 수 없던 중대형 폭격기 정도]]였고 또한 전황이 나빠져 수세에 몰렸을 때나 고려할 만한 사항이다.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실의 국군 역시도 육군의 항공대에서 시작하여 49년 10월 1일 독립 병종으로서 공군이 창설되었다.] * 대전략 게임 [[하츠 오브 아이언 4]]에서는 소련과 일본의 국경분쟁 이벤트로 발생한다. 정확히는 [[하산 호 전투]] 실제역사도 그렇고 여기서도 대부분 소련이 이긴다. * [[워 썬더]]에서는 맵으로 등장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